프랑스 웹에 26일 오후에 뜬 요안 관련 장문 기사입니다.
처음 보고선 번역할 엄두가 안나는 길이 였는데-_-
그냥 대충 읽다보니까
대부분은 이 블로그에 다른 인터뷰/기사 등을 통해 올라온 이야기지만
이 블로그에 없는 내용도 조금 있어서 날림으로 번역해봐여.
주로 요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접은 글에:)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요안 구르퀴프, 라모르의 아이
26/12/2010 | 17H00
자주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재능 또한 아주 충만한 이 미드필더는,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플레뫼르에서 태어나 플루프라강에서 축구를 배운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지역 팀들의 분위기를 흠뻑 머금고서 렌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요안 구르퀴프는 브르타뉴에서 축구선수로서 자신의 커리어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는 라모르의 테니스 클럽에서 테니스를 했었습니다". 그의 테니스 선생님이었던 장-로익 르 겔라프가 말했다. "그는 아주 재능있는 녀석이었습니다. 보기만 하면 바로 그것을 따라했죠. 또 코트 위에서 그는 정말 고집불통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7살 때부터 같이 테니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르퀴프의 단짝 친구인 위베르 바론이 이어갔다. "어느 대회 경기에서 내가 그에게 이긴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엔 난 한번도 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요안 구르퀴프는 15/3 레벨의 테니스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또 12살에 모르비앙의 테니스 챔피언이었다. 그 무렵 그는 그 나이 대의 주니어 선수들을 위한 대회 중에서 가장 유서깊은 유럽 대회 중 하나인 '슈퍼 12 오레이 오픈'에 출전했다. 그가 살던 곳에서 약 3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그 대회는 그에게는 하나의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월요일에 있었던 첫 라운드에서 탈락한 그는 그 후 관중석에서 자신보다 5주 일찍 태어난 라파엘 나달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 후에 나는 내가 축구를 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4살이 된 구르퀴프가 웃으며 말했다.
요안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선택을 했고, 그는 축구에 더 적합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그 아이의 형인 에르완은 수영이나 사이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안의 취향은 공이었죠." 그의 어머니 마린 탈루아른 여사가 회상했다.
요안이 생후 6개월이던 어느 날, 그녀는 요안을 데리고 아가들을 위한 수영 교실에 참여했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아들이 강사가 공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그 강사에게로 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후 아가 요안은 그의 아버지가 소속 팀인 르 망의 선수들과 함께 프리시즌을 준비하고 있던 쥐라의 모르비에의 한 축구 피치 가장자리에서 첫 걸음마를 뗐다.
요안 구르퀴프의 삶에서 결단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과도 같은 것이다. 스타드 렌의 유스 팀 출신이이었던 크리스티앙 구르퀴프는 준수한 실력을 갖춘, 기술적으로 훌륭한 선수였다. 그는 갱강, 루앙, 퐁-라베, 로리앙, 르 망과 같은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팀에서 주로 뛰었다.
그는 수학 교사로서의 업무와 병행해 축구 클럽의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했고, 그는 선수일때보다 감독으로서의 성공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 당시 3부 리그에 있던 로리앙의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 그의 감독으로서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당시 5살의 요안은 축구를 처음 시작하는 꼬마들을 위한 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꼬마 요안은 아버지 덕분에 성인 팀의 훈련 세션에 자주 따라가기도 했다.
"그는 항상 골대 뒤에서 공을 갖고 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리앙 소속의 선수였던 크리스토프 르 루가 말했다. "그는 우리 팀 골키퍼에게 몇 번의 슛을 날리고는 했었죠."
정말로, 요안은 단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클럽에서 뛰고서도, 집 마당에서나 로므네-케로슈에 있는 학교 교정에서도 공을 찼고 그 어디에서나 공을 찼다. 주말에 펠레의 비디오를 보지 않는다면, 그가 하는 것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단짝 친구인 벤자맹, 디미트리, 디에고와 함께 디에고의 할아버지네 땅에서 2:2로 공을 차는 것이었다.
그 후 그들 모두는 최소한, 프랑스 5부 리그에 해당하는 CFA 2에서 뛰었다. 12살이 되어서 요안은 테니스를 접고 축구에 온전히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오레이에서 있었던 테니스 대회로부터 8개월 이후에 그는 프랑스 최고의 유소년 축구 기관 중 하나인 플루프라강의 유소년 축구 센터에 선발되었다.
일주일 중에 5일을 생-브리웩의 교외에 위치한 그 곳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면서, 그는 축구 선수로서의 내밀한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생활을 좋아했고 또한 그는 자유로웠다.
"내가 그를 처음봤을 때, 나는 그가 스스로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누구누구의 아들'이란 무게감 때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플루프라강 유소년 축구 센터의 소장인 패트릭 파팽이 회상했다. "그렇지만 축구에 관해서는, 이미 이 지역내에서는 그와 견줄만한 선수가 없었습니다."
요안 구르퀴프의 진급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18명의 선수 중에서 6명만이 프로 축구 선수로의 길을 가게 된다. "또래들 사이에서 그(구르퀴프)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경기의 주역이라고 인식된 적이 없었고 그 또한 자신이 주역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그는 관대한 리더였고 사교적인 소년이었죠. 학교 수업시간에는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않을 정도로 사교적이었습니다." 파팽이 말을 이어갔다. "그가 플루프라강에 도착했을 때 그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신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2년 후 14살이 되어 이 곳을 떠날 때 그는 변해있었습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고, 또 자신감을 갖고 있었죠. 그는 요안 그 자신으로서 존재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의 축구 인생에서 그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크리스티앙 구르퀴프 그 자신이 아름다운 축구를 신봉하며 과학적이고 로맨틱한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감독이고, 또한 프랑스 내에서 가장 명망있는 축구 감독 중 한명이기에 그런 감독의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로리앙에서의 첫 10년 후에 팀을 1부 리그로 올려놓은 크리스티앙 구르퀴프는, 프랑소와 피노가 영입한 좋은 선수들이 있는 스타드 렌으로 팀을 옮기게 된다. 당시 15살의 요안은 여전히 로리앙의 유스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와 떨어질 수 있었을까?
"당시 그(요안)는 브르타뉴 내에서 그 또래 중 가장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스타드 렌 유소년 센터의 소장인 파트릭 람피용이 회상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요안의 소속은 로리앙이었고 두 팀(로리앙과 스타드 렌) 사이에는 각 팀의 어린 선수에 대한 상대 팀으로의 이적 제의를 금지하는 일종의 협정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 아들에게) 관심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요안을 데려오기 위해) 허리라도 숙이겠다 대답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구르퀴프와 렌의 로맨스는 얼마가지 않아 끝이 났다. 5년 짜리 계약서에 사인한지 몇 달 후에 구르퀴프 시니어는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해고되었고 요안은 렌을 떠나는 것을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취했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요안 구르퀴프가 그 후에 말했다. "나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고, 그 일은 나로 하여금 프로의 세계에 염증이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의 것들 만을 조언해주셨고, 그때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렌에 계속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그의 성장은 아주 눈에 띄었다. 2003년 5월 그는 프랑스 유소년 선수들 간의 쿠프 드 프랑스라고 할 수 있는 쿠프 강바르델라 결승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팀은 그 경기에서 스트라스부르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는 바칼로레아를 취득했고, 또 그는 스타드 렌과 자신의 첫 프로 계약을 맺었다.
2004년 2월 7일, 17살이던 요안 구르퀴프는 자신의 리그 앙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그가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들,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그는 이미 평균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옛 동료인 올리비에 소랭이 말했다. "어느날 우리는 그에게 룰렛을 그만 하라고 외쳐야했습니다. 고참 선수들이 슬슬 짜증이 났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멈추게 만들기엔 그는 아주 고집이 셌습니다." 유스 팀에서 구르퀴프를 지도했던 감독인 랑드리 쇼뱅이 말을 이어갔다. "그는 스스로를 비판에 정면으로 맞서게 해줄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그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 렌에서 총 66경기를 뛴 후, 그는 2006년에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그 후 그는 보르도를 거쳐 리옹에서 뛰고 있고 프랑스 국가 대표팀에도 발탁되었으며 영광과 고난을 모두 겪었다. 그러나 그 많은 것을 겪고도 요안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고 있다. 이번 시즌 초반, 자신의 아버지가 현재 맡고 있는 로리앙과의 경기를 앞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로리앙은 나의 도시입니다. 나는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나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고 나 또한 그 곳에서 휴가를 보냅니다. 로리앙은 나의 집입니다. 나는 브르타뉴인 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번역: 페레소녀
원 출처: http://www.lesinrocks.com/actualite/actu-article/t/57015/date/2010-12-26/article/yoann-gourcuff-enfant-de-larmor (사진 포함)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출처: http://yoanngourcuff.tistory.com/1082
아래는 부연 설명..
1.
CFA 2
CFA는 Championnat de France Amateur의 약자로 프랑스 아마추어 리그 레벨에 해당합니다.
CFA와 CFA 2로 나뉘어지며 등급으로 따지자면 CFA는 4부, CFA 2는 5부가 됩니다
CFA 같은 경우는 4개 그룹 총 72개 팀에서 시즌 후 가장 승점이 높은 4팀이 3부 리그에 해당하는 나시오날 리그로 승격되고, 하위 4팀은 CFA 2로 강등된다고 하네요
2.
PEF 플루프라강PEF Ploufragan
PEF 플루프라강 (공식 명칭: 앙리 게렝 국립 기술 센터)은
프랑스 축구협회 산하의 9개 엘리트 유스 훈련센터 중 브르타뉴 지역을 관할하는 유소년 훈련센터이고
주중 합숙(주간에는 학교를 가고 야간에 축구를 배운다고), 주말 귀가의 체제로 총 2년의 코스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자세한건 위키 http://en.wikipedia.org/wiki/PEF_Ploufragan
이건 요안이 플루프라강 유소년 축구 센터에 입소한 후의 단체사진이에여.
사진에서 뒷줄 맨 왼쪽이 패트릭 파팽씨, 그 옆(뒷줄 왼쪽 두번째)이 요안
테니스를 해서 그런지 키는 보통같은데 어깨가 레알 ㄷㄷㄷㄷ
그치만 표정은 별로 좋지 않군요-_-;
3.
쿠프 강바르델라Coupe Gambardella
쿠프 강바르델라는 프랑스 축구협회 주관으로 치러지는 19세 이하 프랑스 유소년 클럽 대항전이라고 하네여.
자세한건 위키:3 http://en.wikipedia.org/wiki/Coupe_Gambardella
그리고 마지막 문단은...
요안의 고향은 정확히 하자면 로리앙 바로 옆의 플레뫼르인데
구글맵에서 지도보니 로리앙 바로 옆이 플레뫼르, 딱 붙어있더라구요
그래서 요안의 베이스 캠프는 로리앙이라고 봐도 별 문제 없을듯.
뭐 중학교도 로리앙에서 다녔다니깐...
이 기사 중간 중간에 언급된 요안의 걸음마에 대한 에피소드,
요안의 어릴적 이야기, 요안의 문제의 친구 3인방, 요안과 구르퀴프 시니어의 렌 시절에 대한 이야기 모두
제가 예전에 번역했던 인터뷰들에 더 자세하게 있으니 궁금하시면 찾아보시구여...
그나저나
펠레 비디오 아니면 친구들과 축구...
ㅋㅋㅋㅋㅋㅋㅋ구요안 야이 덕후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내 쩌네효...ㅋㅋ...ㅋ.ㅋ.ㅋ.....
그리구...
요안이 '브르타뉴 인인 것이 자랑스러워요'라고 한 건 처음이 아닌데
그러면 구요안 넌 브르통(브르타뉴 어)은 할줄 아니?
하고 묻고 싶네여-_-ㅋㅋㅋ
스페인의 바스크, 카탈루냐 출신 선수들은 각각 바스크 어랑 카탈루냐 어 할줄 안다고 들은거 같은데 ㅡ.ㅡㅋㅋ
물론 못하는 선수도 있을수 있겠지만
과연 프랑스 브르타뉴 출신의 구요안은....
그런디 브르타뉴에도 바스크나 카탈루냐 처럼 대표팀이 따로 있다네요.
바스크나 카탈루냐 대표팀처럼 활발하게 경기를 하고 그런건 아닌거 같아보였지만 말이져.
크리스티앙 구르퀴프 씨도 브르타뉴 대표 경력이 있다는걸 본 기억이 납니당.
어쨌든
이렇게 2010년 마지막 기사 해석을 마쳤습니다:)
와 이건 레알이야 <
내가 이걸 어떻게 한거지?!!!
26일 오후에 올라온 기사를
27일 오후에 번역해서 당일 밤에 올리는 저도 참.. (여긴 아직 27일이에여)
-_-
구요안의 농노인 내 인생 후새드
구요안이 미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