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ann Gourcuff/french delight

[Article] 요안 구르퀴프, 공의 아이

페레소녀 2010. 11. 4. 00:21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요안 구르퀴프, 공의 아이

2009년 1월 5일



로리앙의 역사적인 감독의 아들. 10년 만의 첫 브르타뉴 출신 프랑스 국가대표. 젊어진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상징. 이 모든 것 이전에 요안 구르퀴프는 재능이라는 축복을 받고 축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경쟁에 매료된, 공의 아이였다.

그에게는 축구와 테니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11살 무렵이었던 라파엘 나달은 브르타뉴 오레이에서 열린 Super 12 오픈을 우승한 후, 1998년 2월에 (축구를 그만두고) 테니스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했지만 그 주 월요일에 첫 라운드에서 패했던 대회 유일의 브르타뉴 인 또한 그 당시 같은 고민을 했다. 현재 테니스 세계 챔피언(라파엘 나달)보다 5주 늦게 태어난 요안 구르퀴프는 그에 대한 결정을 하기까지 1년을 더 기다렸고 그는 나달과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 훌륭한 선수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소질은 그들이 스스로 한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



<<그 아이는 공을 필요로 했어요>>


점성술사들이 뭐라 하던지 간에, 요안 구르퀴프는 공의 기운을 갖고 있다. 혹자들은 그가 축구선수의 기질을 타고 났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어릴적의 가정 분위기와 같은 주변 환경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 아이 형, 에르완은 수영과 사이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요안의 어머니 마린 탈루아른 여사가 회상했다. <<요안은 공을 필요로 했죠.>> 가족들의 뇌리에 첫번째로 떠오르는 기억은 생후 12개월의 작은 아가 요안에게는 너무나 컸던 공이다. 그 공은 당시에 그랬듯이 사람의 손으로 바느질 된, 32개의 흑백 가죽 조각으로 만들어진 공이었다. 그 이야기는 20 여년 전, 그의 가족이 아버지 크리스티앙이 맡은 팀의 프리 시즌 훈련에 함께 했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더웠던 여름 날씨 때문에 크리스티앙 구르퀴프의 팀은 산이 있는 프랑스 동부로 전지훈련을 갔었다. 



<<그 아이는 이미 정확했습니다>>


당시 르 망의 플레잉 코치였던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팀과 함께 프랑스 동부 쥐라에 있는 모르비에로 전지훈련을 갔다. 선수들이 그곳에서 훈련을 하는 동안, 선수들의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첫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던 아가 요안은 손과 발로 기어다니며 훈련 도중에 흘러나온 공들을 쫓아다녔다. 그러다 그 아가는 큰 공에 손 하나를 얹었고, 다른 손 하나도 공에 얹은 후 그 공을 짚고 일어섰다. 그 날 요안은 자신의 첫 걸음마를 뗐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와 함께한 공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그로부터(첫 걸음마를 뗀지) 7년 후에, 요안은 아버지를 따라 당시 준 프로리그에 속해있던 FC 로리앙의 훈련에 동행하는 꼬마가 되었다.  <<요안은 항상 골대 옆에서 공을 갖고 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팀의 리더였던 크리스토프 르 루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골키퍼였던 필립 슈트를 상대로 종종 직접 슛을 하고는 했었죠. 훈련이 끝나면 가끔 나를 포함한 선수들과 함께 패스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안은 열정적이었고 축구를 위해 살았습니다.>> 

아들이 어릴적에 살던 집 담벼락을 가리키며 요안의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는 이 담벼락에 공을 차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서도 킥 연습을 하기 위해 이 담벼락이 필요했던거죠.>> 어머니의 기억속에서 소년은 이웃의 유리나 화분을 깬 적이 없다.  <<요안은 그때부터 이미 정확한 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년에게 그런 혼자만의 연습은 자신이 뛸 두 종류의 경기를 위한 것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 중 한 종류의 경기는 로므네-케로슈에 있는 초등학교 수업 시간의 경기였고, 학교 교장인 모니크 네들렉은 여전히 그 소년을 잊지 않고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기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종류의 경기는 그가 다섯 살때 부터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FC 로리앙의 유소년 팀의 경기였다.




<<디에고의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죠>>


그 후 요안은 지금까지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과의 2:2 경기를 무엇보다도 즐겼다. 벤자맹 페론, 디미트리 르 그랑, 디에고 예소라는 이름의 친구들과 함께한 그 2:2 경기는 디에고의 할아버지의 땅에서 벌어졌다. 그 소년들은 모두가 꽤 좋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 네 명은 모두 최소한 CFA 2 레벨에서 뛰었고 그 중 두 명은 프로선수가 되었다.

<<디에고의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죠. 매주마다 아이들을 자신의 농장으로 초대해주셨으니까요. 어쩌면 그 분이 요안의 적성을 일깨워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안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쩌면 그녀는 아들의 친구 디에고에게도 고마워해야 할수도 있다. 디에고는 요안보다 먼저 PEF 플루프라강에 입소했고 또한 그것이 요안이 축구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10 여년 전 요안이 축구를 선택함으로써, Creps de Poitiers의 테니스 선생들은 그가 테니스를 배우러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번역: 페레소녀

원 출처: http://www.letelegramme.com/ig/dossiers/breton-annee-2008/yoann-gourcuff-un-enfant-de-la-balle-05-01-2009-190588.php (사진 포함)
출처:
http://yoanngourcuff.tistory.com/1005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2009년 초의 기사라 오래된 기사이긴 한데-_-

읽어볼만 한거 같아서 번역해봤슈. 

아래는 부연 설명과 잡담: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