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클레망 그르니에- 오랫동안 기다린 그러나 위대한 성장
오늘 포스팅은
구요안 팬들 사이에서 쁘띠G라고 불리는 클레망 그르니에 관련 기사에요.
(참고로 큰G는 구요안...ㅋㅋㅋ)
꽤 길긴한데 제게는 재밌는 기사였습니다
물론 번역할땐 다른 이야기지만여 Aㅏ...
참고로 이 포스팅은
항상 리옹 소식을 깔끔하게 전해주시는 알레리옹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3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클레망 그르니에- 오랫동안 기다린 그러나 위대한 성장
Par Anthony Faure
Posté le 12/12/2011 à 08:00
클레망 그르니에는 오래 전부터 정상을 노리고 있었다. 넘치는 재능을 갖고 있고, 3년도 더 전에 프로 계약을 체결한 '클렘'은 드디어 이번 시즌 초에 자신의 능력을 폭발시켰다. 몇 년에 걸친 노력이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2011년 8월 31일, 톨라 볼로쥬에는 광풍이 몰아닥쳤다. 미랄렘 피야니치는 이탈리아로 떠났고, 요안 구르퀴프와 에데르손은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림피크 리옹의 가용 자원에 플레이 메이커는 없었다. 대중들과 서포터들은 플레이 메이커의 부재에 대해 우려했다. 그러나 장-미셸 올라스는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올림피크 리옹 회장은 클럽 유스 출신의 선수들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계속해서 피력했다. 그는 특히 리옹의 유스 출신 선수 중에서 최고의 선수중 한명인 클레망 그르니에를 계속해서 지지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그르니에는 이번 시즌의 초반을 아주 잘 치러냈고, 또 그와 함께 자신이 앞으로 확고한 주전이 될수 있을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 아르데슈아는 겨우 위기를 극복했다. 나이에 비해 많은 재능을 가졌고 17세에 프로 계약을 한, 19세 이하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가진 그는 자신의 길을 잃었었고 자신의 새로운 삶과 지위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어려웠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클레망은 단 시간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그 아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 아이는 점점 멍청해져갔다. 그 상황을 벗어나는데 6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를 다시 바로잡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클레망을 다시 되찾은 것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그는, 침착하게 그리고 아주 여유롭게 대답했다. "내 스스로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내가 빠른 시간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7살 때 나는 프로 선수로 자리잡기 위한 모든 능력을 다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클럽의 유소년 훈련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던 레미 가르드는 그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현재 퍼스트 팀의 감독이 된 그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그르니에)는 꽤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는 그것들(자신이 겪은 일들)을 분석하고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에게 좀 더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일들에서 배울 점을 찾았다." 그르니에를 팀에 남기기를 강력히 원했던 클럽은 그가 '내가 유소년 기를 보낸 클럽에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계약을 2014년 까지 연장한 것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
엔조네 집에서 하숙
이 아르데슈아는 세살 반의 나이에 자신보다 두 살 많은 형인 베르트랑과 함께 FC 아노네에서 처음으로 축구공을 찼다. 리옹의 7번을 달게될 이 아이는 그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나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 언제나 관대하고 정성껏 아들을 보살펴준 어머니 애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눈여겨 본 감독(리그 2에서 뛴 전직 선수였던 잭키 레이노-편집주)에 의해 세심한 관리를 받은 클레망은 몇년 후 올림피크 리옹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어린 공격형 미드필더가 9살을 지나 또 10살이 되자 리옹의 강력한 입단 제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리옹의 제의는 실패했다. 미셸 그르니에(클레망의 아버지)가 아직 많이 어렸던 자신의 아들을 리옹으로 보내기를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클레망이 11살이 되었을때, 리옹 클럽은 세번째 제의를 했고, 미셸은 재키 레이노와 상의한 끝에 자신의 뜻을 굽혔다: "이미 당신이 두번 거절을 했으니 만약 이번에도 거절하면 리옹은 더이상 제의를 해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클레망은 리옹으로 갔고, 리옹에서의 그의 나날은 생-루이 생-브뤼노 중학교의 기숙사와 제를랑에 있는 훈련 피치에서의 훈련으로 이뤄져있었다.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13살이던 해 연말에 유스팀의 교육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클레망이 말한 것이다: "클레망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다: 모든 걸 그만 둘거에요. 난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의 아버지가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결국 '클렘'은 자신의 동료이자 현재 리옹 소속으로 리그 2인 불로뉴-쉬르-메르로 임대가 있는 엔조 레알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엔조의 어머니인 크리스틴 레알이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 아이(그르니에)는 나의 여섯번째 아들과도 같다.(그녀는 5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편집주) 클레망은 주말이 되어도 자신의 집에 가고 싶지 않아할 정도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라자냐를 만들어주고 그의 어머니는 야채를 먹였다.(웃음)" 그러한 기억은 클레망의 머릿속에도 가득하다: "그 때는 정말 즐거운 시기였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그들 덕분이기도 하다."
가르드: "클레망은 여전히 해야할 것이 많다"
조금씩 조금씩 아노네 출신의 이 선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르망 가리도가 이끌던 16세 이하 대표팀에서 그는 오른쪽 윙어로 뛰었다: "이르망은 나로 하여금 한단계 더 발전하게 해준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코칭스탭이 항상 내 뒤에 있어서 나는 반발심을 가지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선수 뒤에서 선수가 앞으로 가도록 밀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17살 반이 되었을때 그는 자신의 첫 프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리옹에 남든지,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든지의 문제였다. 다른 클럽들이 나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리옹이 나와 계약을 한 것이었다."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꿈만 같은 나날들이었을까? 아니다. 근심의 시작 그리고 어려운 시기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거만하고 종잡을수 없는 꼬맹이라는 이미지는 그를 여전히 따라다닌다.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알고 있다. 아마도 그건 예측할수 없는 플레이를 하는, 내 플레이 스타일 때문일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거드름피운다는 인상을 가질수도 있고 또 내가 쉽게 쉽게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가질수도 있다."
그의 퍼스트 팀 감독인 레미 가르드가 그르니에에 대해 말했다: "클레망에게는 여전히 해야할 것이 많다. 그가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고 또 그 잠재력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거들먹거린다는 인상을 받을수도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계속 될 것이다. 클레망은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이 겸손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한다."
빛나는 미래?
클레망은 사생활에서는 소박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외출하기 또는 쇼핑 등. 피치 위에서는 가끔씩 브루노 제네시오에 의해 CFA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아무런 의심의 여지없이 발전하고 있고, 자신의 약점이었던 태클에서도 점점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이 선수의 능력을 더 잘 표현할수 있는 포지션은 다른 선수들 보다 먼저 경기를 읽을수 있는 플레이 메이커의 자리이다. 그는 조금씩 조금씩 그 자리에서 경기를 할 기회를 얻어나갔다. 꾸준히 노력한 덕분이었다. 9월 초 이후로 이 아르데슈아는 예전의 모습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구르퀴프와 에데르손이 부상당한 상황에서 그르니에가 자신의 기회를 움켜쥔 것이다.
그르니에는 팀의 플레이 메이커로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보여주는 플레이의 세련됨과 정확성이 그 이유였다. 그 놀라움은 미셸 바스토스와 같은 그의 팀 동료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아주 놀라운 실력을 갖고 있는 어린 선수이다. 그는 비범한 기술을 갖고 있다. 그는 이미 다른 선수들보다 앞서있다. 그는 리옹에 훌륭한 미래를 가져다줄 선수이다."
그러나 가장 큰 칭찬은 분명히 그의 감독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르니에는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많다. 그는 다른 선수들을 경기하게 만들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팀 전체를 발전시킬수 있는 능력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번역: 페레소녀
원 출처: http://www.lyoncapitale.fr/journal/univers/Sport/Portraits/Grenier-la-grande-et-tortueuse-ascension (사진 제외)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출처: http://yoanngourcuff.tistory.com/1382
아르데슈아 Ardéchois - 아르데슈 출신의 남자를 말합니다. 그르니에의 고향인 아노네가 아르데슈라는 데파르트망에 속해 있어서 그런것 같네요.
그르니에도.. 질풍 노도의 시기가 있었군요-_-)
하긴 뭐 중고딩때는 사춘기니깐...
축구 선수들은 다들 비슷한가봐요 ㅋㅋ
구요안은 12개월에 공으로 걸음마를 뗐다는데 그르니에는 3살 반에 공놀이를 시작하고 ㄷㄷㄷ
그런데 그르니에가 사실 생긴게 되게 좀 뭐랄까 진하게 생기고 아랍쪽 스멜도 나서 그쪽 혈통인가 했는데
아버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본인도 그렇고 이름은 진짜 성골 프렌치 스멜이 훅훅 나네여 ㄷㄷ
퍼스트네임이 미셸 베르트랑 클레망 ㄷㄷㄷ
사실 제가 리옹 응원하기 전부터 그르니에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0910시즌 후반기 쯤부터?)
1011시즌부터는 더 기회를 많이 받을줄 알았더니
작년 여름에 흠좀무 하게 구요안이 떡하니 리옹으로 이적을 해버려서...
잘잘못을 따질수 없는 일인데 막 제가 다 그르니에가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렇더라구요^.ㅜ
그래도 구요안이 리옹으로 이적했을때 구요안 빠돌이-_-;가 되어서 보기가 참 좋았습니당.
그르니에가 말하는거 보니까 구요안이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고 그러나보더라구요
그리고 경기 날에 선수들 단체로 산책할때나 구요안과 그르니에가 둘다 서브로 경기를 시작할때 보면
구요안 옆에 그르니에가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 친한가... 싶기도 하네요 ㅋㅋ
일요일 새벽의 에비앙 전에서도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던데.
어쨌든 이렇게 그르니에 기사를 한번 번역해보았습니다.
그러면 블로그 방문자 여러분 즐거운 월요일(....이 가능할까) 보내세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