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나온, 리옹 지역 축구 잡지인 플라네트 리옹에 실린 요안에 대한 기사입니다.
많이 길지만-_-; 요안의 축구 외적인, 어릴적 이야기도 있으니 읽어볼 만 한 글이에요.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미스테리 구르퀴프
진정한 요안 구르퀴프는 어떤 사람인가? 플라네트 리옹은 상당히 비밀에 쌓여진 올림피크 리옹 플레이메이커의 성격을 파헤쳐보려고 한다.
"내 변호사와 이야기하세요." 우리가 요안 구르퀴프에게 이번 호를 위한 인터뷰를 요청했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요청하는) 우리에게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에이전트와 함께 일하는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구르퀴프는 변호사이자, 로르 마노두의 일도 담당하고 있는 디디에 풀메흐와 함께 협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요안 구르퀴프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악몽이후로 그는 (월드컵) 전보다 언론과의 접촉을 더욱더 줄이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브르타뉴인의 말이 없이 기사를 써야했다. 그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해보고, 또 현대 축구의 중심과는 거리가 먼 이 선수의 면면을 살펴볼 기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태어나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인 브르타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한다. 구르퀴프는 자신이 태어난 후 어린 시절을 보낸 모르비앙의 플레뫼르에서 1986년 7월 11일에 태어났다. 수학 교사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그의 아버지 크리스티앙 구르퀴프는 전직 축구선수 출신으로 현재 리그 앙의 명성있는 감독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이자 의사인 마린 탈루아른은 젊은 시절에는 좋은 실력의 농구선수이기도 했다. 그런 가정에서 어린 요안은 스포츠로 가득한 세계에서 자랐고 머지않아 그는 자신의 4살 위 형인 에르완처럼 스포츠에 큰 열정을 쏟게 되었다. 그는 5살의 나이에 FC 로리앙의 유스 팀에 입단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역시 FC 로리앙의 A팀 감독을 맡고 있던 아버지의 훈련 세션에 따라가기도 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축구에도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역시 자신이 어릴적 부터 배운 테니스에도 아주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테니스를 계속 했다면) 요안은 아주 빠르게 'Première Série'에 들수 있었을 것이다." 구르퀴프가 6살 부터 12살 때까지 테니스를 쳤던, 또 지금도 그가 브르타뉴에 들를 때면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 테니스를 치는 라모르-플라쥬 테니스 클럽의 회장인 조엘 올리브로가 말했다.
눈길을 끄는 플레이와 한 손 백핸드를 가졌던 어린 요안은 테니스 코트 위에서 한 포인트도 내주지 않았고, 지역 테니스의 유망주가 되었다. 또 요안은 11~12살 무렵 그 나이 대의 브르타뉴 테니스 챔피언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최고 테니스 등급이었던 15/2를 기록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서너번의 테니스 훈련과 세번의 축구 훈련을 병행해야했던 그는 두 스포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고, 결국 그는 축구를 선택했다. 13살이 되던 해에 구르퀴프는 로리앙에서 북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코트-다모르의 플루프라강으로 향했다. 플루프라강에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13세와 15세 사이의 어린 브르타뉴 선수들이 프로 팀의 유스팀에 갈수 있도록 그들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갖춰진 프랑스 축구협회 산하의 유소년 축구 센터가 있었다.
"그는 서커스에 가도 될 정도였다"
플루프라강에서, 구르퀴프는 주중에는 합숙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했다. "나는 (구르퀴프를 본 즉시) 그 아이의 잠재력을 알아차렸다." 플루프라강 유소년 축구 센터의 담당자인 패트릭 파팽이 회상했다. "13살 무렵에, 요안은 이미 아주 훌륭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날 요안은 건물 로비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테니스 공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공으로 발재간을 겨루는 대결을 했었다. 그는 120번도 넘는 횟수를 기록했고 그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는 서커스에 가도 될 정도였다." 플루프라강에서 요안 구르퀴프는 현재 스타드 렌의 주전인 로맹 당제와 실뱅 마르보, AJ 오셰르의 미드필더인 프레데릭 사마리타노와 함께 뛰어난 1986년 출생 세대의 한 축으로 자신의 재능을 가꾸어 나갔다.
2001년에 15세가 된 그는 스타드 렌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그 결정은 같은 시기에 같은 클럽 A팀의 감독이 된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음이 명백했다. 스타드 렌 유스 팀 담당자인 파트릭 람피용이 회상했다: "그의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을때, 그(크리스티앙 구르퀴프)는 나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허리라도 굽히겠다' 라고." 그리고 그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가 해고된 후에도 혼자 그 곳에 남기로 결정함으로서 구르퀴프는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그 일(아버지의 해고)은 그에게 큰 아픔을 주었지만, 합숙소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브르타뉴 음악을 듣기를 좋아했던 그는 렌의 유스팀에 잘 적응해나갔다. "재미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듣던 랩 외에 또 다른 음악을 들을수 있었으니까.." 렌 유스팀의 관계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어렸을때 부터 구르퀴프는 브르타뉴인으로서의 자신의 뿌리를 증명해보였고, 또 그는 로리앙으로 돌아갈때면 종종 브르타뉴 전통 축제인 'Les fest-noz'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동안 스포츠 내적인 그의 재능은 폭발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제 나이 대를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그는 자신보다 두 살이 많은, 1984년에 태어난 선수들과 함께 2003년에 쿠프 강바르델라를 우승했다. 특히 그는 스트라스부르를 상대로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치러진 그 대회 결승에서 스타드 렌 팀의 첫 골을 프리킥으로 넣어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그(요안)와 같은 아이들은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냥 코치들이 동행하기만 하면 된다. 요안은 감독에게는 완벽한 선수이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재능이라는 요소와 이기적이지 않은 태도를 모두 갖추고 있다." 당시 요안의 유스팀 코치였던 랑드리 쇼뱅이 설명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학업에도 아주 열심이었다. "그는 아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되도록이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렌의 유스팀 선수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고, 또 당시 구르퀴프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크리스토프 롱스레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어느날 그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화가나 책상을 밀어버린 적도 있었다."
소년 구르퀴프는 학구적이었다. 바칼로레아 시험을 쳐야할 날이 다가 오자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점검 훈련에서 자신을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방에서 혼자 바칼로레아 시험을 위해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구르퀴프)는 나를 안심시키려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바칼로레아를 딸거니까.'" 람피용이 말했다. 그 후 허락을 받은 그는 2004년 5월 스타드 렌과 프랑스 리저브 챔피언쉽 우승을 다투던 모나코 원정에 동행하지 않고 혼자 렌에 남아 공부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바칼로레아 STT를 취득했다.
한편 구르퀴프는 2003년 11월 17살의 나이로 자신의 첫 프로 계약을 하게 된다. 그는 라슬로 볼로니가 이끌고 있던 스타드 렌 A팀의 구성원이 되었고 볼로니는 곧 그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2004년 2월 7일 오셰르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76분 세드릭 바르보사의 교체 멤버로 리그 앙 데뷔전을 치렀다. "여전히 그때 기억이 잘 난다." 바르보사가 말했다. "왜냐면 그때 내가 부상을 당했고 미드필더에 있던 내 자리를 메꾼게 요안이었기 때문이다. 그 경기에서 사람들은 요안이 이미 평범한 선수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자주 나스리나 벤제마를 미래의 지단이라 말하고는 했는데, 나는 (나스리와 벤제마보다) 그의 플레이가 지단과 더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내성적인 구르퀴프는 팀 내의 또 다른 브르타뉴인이었던 에티엔 디도의 도움으로 A팀에 적응해나갔다. "라커룸에서 나는 그의 옆자리였는데, 그가 말수가 적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경기 전후에 휴식을 취할때는, 그는 그저 꼬맹이 룸메이트일 뿐이었다." 바르보사가 이야기했다. 그 후 구르퀴프는 2005년 7월 북아일랜드에서 있었던 19세 이하 유럽선수권에서 당시 니스 소속이었던 단짝 친구 위고 요리스와 함께 그 대회를 우승했다. 또 그 다음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리그에서 총 36경기를 출전해 6골을 기록하며 훌륭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그는 2006년 2월 25일에 있었던 리옹 원정에서 1골을 기록해, 당시에 적수가 없을것만 같았던 제라르 울리에의 팀을 스타드 렌이 4-1로 무너뜨리는데에 일조했다.
유죄선고를 받다:
그 시즌(2005/06시즌) 말까지, 그는 2007년 6월에 만료되는 자신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렌이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다." 구르퀴프가 갓 데뷔했을 때부터 그를 자주 보아온 Ouest France지의 기자인 니콜라 카르넥이 말했다. ""클럽은 그가 19세 이하 유럽선수권을 우승한 그 직후에 그와의 계약을 연장했어야 했다. 그러나 스타드 렌 클럽은 그 시즌이 끝날때까지 계약 연장 제의를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구르퀴프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당시에 요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나에게 연락을 해왔었다." 플루프라강에서 그의 담당자이기도 했던 패트릭 파팽이 회상했다. "렌에서는 고작 20살도 되지 않은 선수에게 리더가 되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를 원치 않았고, 자신이 좀 더 발전할수 있는 클럽을 원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내가 그에게 '너의 가장 큰 목표는 2010년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을때 그는 '아뇨 그건 불가능해요. 국가대표팀에는 잘하는 선수들이 많은데...'라고 대답했었다."
그 후 요안 구르퀴프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렌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그를 원하던 팀은 AC 밀란, 모나코, PSG.. 그리고 리옹이 있었다. "내가 장-미쉘 올라스(리옹 회장)와 제라르 울리에(당시 리옹 감독)를 만났었다." 축구 내적인 선택을 할때 구르퀴프의 가장 큰 조언자인 그의 아버지 크리스티앙 구르퀴프가 말했다. "요안은 밀란과 리옹 사이에서 무척 고민했다. 결국 요안은 리옹보다는 밀란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결국 그는 약 400만 유로의 이적료로 밀란과 5년의 계약을 맺었다.
한편 렌에서의 구르퀴프의 생활은 2006년 9월 그가 로리앙에 위치한 경범죄 재판소에서 폭행죄로 2000 유로의 벌금을 선고 받으면서 씁쓸한 결말을 짓게 되었다. 당시 구르퀴프는 같은 해 2월 27일 모르비앙 엔느본의 디스코텍에서 벌어진 경미한 폭행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이탈리아에서의 시작은 꽤 좋았다. 그는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첫 선발 출장이었던 9월 13일의 AEK 아테네 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그러나 그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카카, 피를로, 가투소, 시도르프가 있는 팀에서 그는 기회를 그다지 많이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2006년 12월 밀란에서 그와 함께 며칠을 보냈다." 니콜라 카르넥이 말했다. "그는 이미 많은 발전을 했고 그는 밀라노 교외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훈련도 참관했었고 그와 말디니와 함께 점심식사도 했었다." 카르넥이 말을 이었다. 카르넥이 말하는 말디니는 작년 가을 구르퀴프를 맹렬히 비난한 그 말디니와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구르퀴프는 꽤 성공적이었던 밀란에서의 첫 시즌 후에 이어진 두번째 시즌에서는 리그에서 단 4번의 선발 출장만을 하며 거의 경기에 뛰지 못했다.
크리스티앙 구르퀴프는 이렇게 분석했다: "안첼로티에게 할수 있는 비판은 이것이다. 첫 시즌을 잘 보낸 요안에게 그들(안첼로티를 포함한 구단 간부들인듯)은 연봉 인상과 함께 요안과의 계약을 1년 연장했고, 또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새 시즌에는 더욱더 많은 경기 시간을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요안에게는 그것(플레이 시간의 증가)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러나 그가 휴가에서 돌아오자 그는 브라질 출신의 에메르손과 계약했다. 요안은 곧 자신이 그의 계획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란에 남아있었던 것은 애석한 일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에는 호나우딩요가 밀란으로 왔고, 구르퀴프는 밀란에서 보르도로의 임대를 준비했다. 보르도에서 그는 리그 앙의 스타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주전 선수가 되었다. 보르도에서 그는 탄탄한 조직력과 공격적인 플레이를 지향하는 감독인 로랑 블랑의 아래에서 뛰게 되었다. 블랑은 이 브르타뉴인이 인터뷰에서 마다 매번 강조하는 '경기를 뛰는 즐거움'을 그에게 다시 되찾아 주었다. 보르도에서의 첫 시즌은 그에게 꿈과도 같았다. 2009년 여름 보르도가 리그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그 자신도 자신의 최고의 기록인 시즌 12골을 기록했다. 그 12골 중에는 그의 역작인 툴루즈와 PSG를 상대로 한 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리그 최우수 선수상 트로피를 수상했고, 그에게 그 트로피를 건네준 시상자는 지네딘 지단이었다. 그것은 옛 레 블뢰의 플레이 메이커의 시대에서 새로운 플레이메이커의 시대로 넘어갔다는 증명과도 같았다.
보르도는 구르퀴프를 완전 영입하기위해 AC 밀란이 내걸었던 1,340만 유로의 완전 이적 옵션을 이행했고 결국 보르도는 구르퀴프와 4년간의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그 계약에는 당시 프랑스 리그 최고 수준이었던 매월 30만 유로의 연봉 계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밀라노에서 보르도로 직접 그를 찾아와 그를 설득하려 했던 당시 AC 밀란의 새 감독 레오나르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르퀴프는 보르도에 남았고, 그 후 그는 발롱 도르 투표에서 20위를 차지하며 2009년을 마감했다. 그것이 그의 영광의 해의 마지막이었다.
지나치게 똑똑한?
구르퀴프에게 2010년은 그의 커리어에서 최악의 해로 남을 것이다. 실제로 보르도는 2010년 들어 맞이한 리그 후반기동안 추락을 거듭했고 결국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유럽 클럽 대항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보르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구르퀴프도 그 책임을 피할수 없었다. 그의 불운은 끔찍했던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남아공에서 리베리, 아넬카, 에브라, 앙리와 같은 다른 동료들의 질투와 빈정거림의 희생양이 되었다. 구르퀴프의 선배들은 그의 성공을 시샘했음이 분명했다. 그 예로, 파리에 있는 아디다스 샵의 외부에 리오넬 메시의 사진과 함께 내걸린 광고 모델은 구르퀴프였다. "구르퀴프의 측근들은 그가 월드컵에서 겪은 주변 분위기와 자신을 향한 말들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월드컵 기간 동안 남아공에서 프랑스 대표팀을 취재한 한 기자가 말했다. 그가 받은 트라우마는 숨길수가 없는듯이 보였다.
그 근거는 9월 초에 톨라 볼로쥬에서 있었던 한 사건이다. 그 날 구르퀴프는 TF1에서 나온 언론인인 다비드 아스토르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 인터뷰 중에 아스토르가가 여름의 월드컵과 리베리에 대해 말하자, 구르퀴프는 그 즉시 손을 떨거나 식은 땀을 흘리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에 이어 그는 아스토르가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절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마이크를 뗀 채 자리를 떴다. 이것은 트라우마를 입은 선수에게서 볼수 있는 행동들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구르퀴프가 언론의 압박을 감내하는데에 문제를 갖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지난해 봄, 그는 보르도의 부진이 팀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언론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감독이었던 로랑 블랑은 그의 발언에 대해 아직 어린 그가 앞으로 언론에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배워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르퀴프에게 있어 또 다른 근심거리는 지난해 11월 26일 '레퀴프'지에 실린 파올로 말디니의 가시돋힌 발언이었다: (요약) "밀란에서 그가 겪은 일은 모두 그의 실수에서 나온 것이었다. (...) 그는 자기 스스로를 관리하는 방법에 있어서 영리하지 못했다. (...) 전술적인 면에서, 그는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려 했다. 또 그는 제 시간에 (훈련장에) 오지 않았다. 그 자신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만 말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 (...) 그가 경기나 훈련을 할때,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지 않았다. (...) 결국 그는 스쿼드에서 스스로 소외된 선수가 되었다." 이러한 발언은 말디니와 같이 자극적인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선수에게서 나온, 뜻밖의 발언이었다. 한편 구르퀴프가 보르도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던 2008/09시즌에, 구르퀴프의 전 감독이던 카를로 안첼로티 또한 이러한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구르퀴프가 이 곳(밀란)에서 출장 시간이 적었던 것은, 그가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프랑스에서 그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가 훨씬 더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 그런 모습이라면 당연히 주전으로 뛸 것이다." 안첼로티는 또 자신의 자서전에서 구르퀴프를 비판한 적도 있었다: "그는 재능있는 선수이지만 약간 이상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아주 이상하고, 자기중심적인 청년이다. 특히 그는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 그는 피치위에 있을때에 불안정했다."
구르퀴프에게 끊임없이 가해진 모든 비판들은 그에게 그림자를 드리웠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보르도에 있었던 2년 동안, 구르퀴프는 그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말디니의 발언 이후 구르퀴프를 지지한 보르도 회장 장-루이 트리오와 골키퍼 세드릭 카라소를 보아도 알수 있다. 또한 리옹에서는, 전 소속팀인 렌에서도 구르퀴프와 함께 뛰었던 지미 브리앙 또한 그를 변호하며 그의 내성적인 성격에 대해 말했다: "(구르퀴프가 렌을 떠난 후에도) 나는 그는 여전히 매력있는 친구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가 자신의 진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구르퀴프의 아버지 또한 말디니의 발언에 강하게 반박했다. "요안은 방해받고있다. 그 아이는 다르다.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다른 문화적 기반을 갖고 있고, 또 다른 지적 관심사를 갖고 있다. 축구계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다르다'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요안 구르퀴프는 지나치게 똑똑한 것이다.
자신을 향한 공격에 대해 구르퀴프는 자신 스스로를 침묵의 벽 뒤에 격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스포츠 내적으로, 그는 리옹으로 이적한 이후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11월 24일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당한 태클로 3주간의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과연 그는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이루어진 자신의 리옹으로의 이적뒤에, 자신에게 주어진 큰 압박감을 감내하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것인가? 지난 8월 25일에 스타드 드 제를랑에 모인 15000명의 서포터 앞에서 이루어진 리옹 스쿼드 프레젠테이션에서 곤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그가 팀의 슈퍼스타로서 또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훈련때 마다 훈련을 빨리 마치고 라커룸으로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다(역주: 팬들과 언론때문인듯). 그리고 그 후에는 자신의 아우디 A5를 타고 조용히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이기에 지금 그의 주변에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만이 남아있다.
번역: 페레소녀
원 출처: Planète Lyon 2011년 2월호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출처: http://yoanngourcuff.tistory.com/1146
아래는 일단 부연 설명이에요.
로르 마노두: 프랑스 국가대표 수영 선수라고 하네여.
'Première Série': 프랑스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테니스 선수 30명을 모은 그룹이라고 하네여.
'Les fest-noz': 브르타뉴의 전통 축제라고 하네요.
브르타뉴의 각 도시/마을의 학교나 스포츠 클럽과 같은 단체에서 1년에 최소 한번 주최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구요안 너 가보트도 여기서 배운거냨ㅋㅋㅋㅋ
자세한건 위키 http://en.wikipedia.org/wiki/Fest_Noz
로리앙에 위치한 경범죄 재판소에서 폭행죄로 2000 유로의 벌금을 선고 받다:
이 사건은.. 요안이 친구랑 디스코텍에 놀러갔다가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다던가 해서 그렇게 시작이 되었대요.
그래서 싸웠는데... 요안에게 맞은 사람이 좀 다쳤었나봐요.
그 후에 요안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벌금 2000 유로를 선고 받았다는데
판결 사유는 '폭행으로 타인에게 8일 이하의 ITT상황을 야기시킨 점' 이었대요.
그런데 ITT가 뭔고하니.. 'Incapacité totale de travail', 이라는데 위키를 보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어느 한 사람이 직업에 관련된 일을 할수없는 육체적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라고 하네요.
오지게도 맞았나보네
그런데 구요안 왜 내가 너 때문에 프랑스 경범죄 처벌 제도까지 봐야하니-_-?
톨라 볼로쥬: 리옹 트레이닝 센터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TF1과의 인터뷰(정확히는 TF1의 축구 프로그램 Telefoot과의 인터뷰)때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제가 9월 당시에 포스팅한 이 글 http://yoanngourcuff.tistory.com/930 에 좀더 자세하게 있어요.
그외에 궁금한것이 있으시면 댓글달아주세요.
저도 지금 저걸 제 손으로 어떻게 12시간만에 번역했는지
제가 번역해놓고도 안믿겨서 어버버버 하고 있는 중이라서
더이상 무슨 말을 써야할지 머리에 떠오르지가 않네요.-_-;
저 기사가 3000자 가까이 되는데 어떻게 한거지....
일단 이 기사에 나온, 월드컵과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몰라요.
진실 여부는 당사자들만이 알겁니다.
그리고 특히 TF1과의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은,
제작진 측과 리옹 구단 사이에
요안이 대답을 거절하는 모습이 찍힌 촬영 테입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있었다고 하기때문에
(리옹 구단 측이 아예 그 테입을 회수해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 구절이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수가 없어요.
한가지 확실한건
'요안이 대답을 거부하고 인터뷰 도중에 인터뷰 룸에서 나갔다'
라는 것 뿐입니다.
그외의 요안의 반응이나 그런 것들은 다 확실하지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읽으시는 분들은 알아서 필터링 하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이 기사 첫 문장에 있는 ㅋㅋㅋ
"내 변호사와 이야기하세요."라는 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요안 너무 4가지 없이 보이지 않나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론이 구요안 널 싫어할만 하다 싶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