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페레소녀입니다.
오늘은 2년을 벼르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번역한, 요안의 2009년 9월 기사에요.
길긴 한데 나름 심층 기사 입니다-_-)
자세한 내용은 접은 글에 있어요.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주의- 이 기사는 2009년 9월에 나온 오래된 기사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세요
요안 구르퀴프- 침묵은 금
19 septembre 2009 à 00:00
축구계의 새로운 별이 된 보르도 소속의 이 23세의 미드필더는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고 미스테리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것은) 신중함 때문인가 아니면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인가? 아니면 이 지난 시즌 최고의 선수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인가?
Par GRÉGORY SCHNEIDER
우리가 요안 구르퀴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를 피치에서 본 것은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그의 모습이었다. 구르퀴프는 2008년 12월 5일에 미디어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지난 시즌의 보르도-발렝시엔(2-1) 전이 끝난 후, 그는 스타드 샤방-델마의 피치 위에서 갑자기 자신의 유니폼 모두를 벗어서 팬들에게 주는 모습을 보였고, 그는 10분 만에 팬티만 입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그 후 몇 주간 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고 또한 그는 게이 매거진인 '테튀'에 의해 12월의 매력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구르퀴프는 그 후에 이 일에 대해 말했다: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들이 놀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좀 든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길 바라긴 하지만, 나는 그것(역주: 좋은 이미지)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요안 구르퀴프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5월에 지롱댕 드 보르도로 완전 이적을 하면서 클럽의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준 지난 시즌 리그 앙 최고의 선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정작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없다: 구르퀴프는 말하지 않는다. 간혹 아주 조금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절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상한 상황
그에게는 보르도에서 경기가 끝난 후와 기자 회견 때에도, 또는 프랑스 국가 대표팀이 클레르퐁텐에 소집되어 있을때도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먼저, 보르도가 낭트의 스타드 드 라 보주아르에서 경기를 끝낸 후에 동료들은 팀 운동복을 입고 일렬로 보르도의 구단 버스에 오를때 구르퀴프는 사복 차림으로 그를 데리러 온 친구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그가 놀라운 골을 넣은 툴루즈와의 경기 이후에 스타드 샤방-델마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의 일이었다. 그는 경기 후에 피곤해 보였고, 마치 화장한 것처럼 무거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 축구에 대해서는 놀라웠다, <<내가 아주 놀라운 느낌을 받은 2,3초 동안이 있었다. 공은 내 소유가 아니었다. 내 바로 옆에서 나를 마크하던 상대 선수의 공도 아니었다. 실제로는, 그 누구도 공을 갖고 있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골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는 선수에게서 충분한 대답을 들을 권리가 있고, 그 대답에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포함되어있다: 그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그러한 질문을 한) 기자를 계속 바라보더니 말했다. <<나는 나에 대해 말하기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세간에서 나에 대해 말하거나 쓰는 글들은 나의 축구를 방해할 뿐이다.>>
그 기자회견을 한 30분 후에 우리는 그에 대해 어렴풋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그가 재밌는 청년이라고 느꼈다. 이런 기자회견과 같은 상황에서 그가 보이는 태도는 우리에게 피할수는 없지만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 유쾌하기도 한 것이었다.
미디어적인 잠재력
그렇다면 이제 언론의 관심은 끝났는가? 아니다: 언론은 사방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노력하고 있고, (그 본인 대신) 그의 아버지인 현 로리앙의 감독인 크리스티앙 구르퀴프에게 접근한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바로 그(구르퀴프 시니어)이다. 그가 말했다: <<5살 때 내 아들(요안)은 펠레가 뛰던 브라질 팀의 비디오 테입을 보았다. 나는 그것들이(브라질 팀의 경기 테입) 요안을 아름다운 축구 기술에 대해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한 스포츠 전문 심리학자가 Ouest France 지에 말했다:<<그의 아버지가 축구 감독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버지는 (자녀의) 길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고, 선수 본인이 현재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뿌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스포츠랩 그룹의 질 뒤마도 르 피가로 지에 말했다:<<그의 이미지는 축구계에서 보이는 현재의 일반적인 축구 선수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구르퀴프는 머리에 헤드폰을 끼고 래퍼와 비슷한 스타일링을 하는 선수들과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가 언론에 노출될때 마다 그의 좋은 교육 수준이 함께 드러난다. 그가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더욱더 좋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미디어적인 잠재력을 이용할수도 있는 것이다.>>
구르퀴프는 자신의 평판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대부분의 다른 리그 앙 선수들은 자신들이 구르퀴프와 같이 18세가 되던 해에 과학과 산업공학 계열의 바칼로레아를 취득했다면 그 점을 자랑스레 말하고 다녔을 것이다. 뭐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요안 구르퀴프의 평판은 그를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언제나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비밀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그 점이 요안이 13살 이었을때 이혼한 그의 부모님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선수로서의 커리어에 관해 조언하고, 더 나아가 축구에 관한 더 많은 것들을 조언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나머지를 관리한다.
르 텔레그램 지에 따르면, 2006년에 아들의 축구 외적인 일을 담당해줄 사람으로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인 디디에 풀메흐에게 접촉한것도 그의 어머니였다. 풀메흐는 축구와 그와 관계된 것들을 상업화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한편으로는 때때로 경계선에 서서 상대방과 자신의 편 사이에서 협상을 하는 유능한 협상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어린이와도 같은 태도를 가진 선수들을 다루는 데는 비교적 취약한 편이다 - '걱정하지마. 우리와 앞으로 계속 함께하면 넌 큰 돈을 벌게 될거야' -
그러나 일반적으로 프로 스포츠 선수는 자신들만의 비밀이 있고, 또한 풀메흐에게도 한가지 방법이 있다: 지난 20세기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은막의 스타들처럼 희소 가치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선수들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현재 구르퀴프의 스폰서는 아디다스 하나 뿐이고, 그 계약도 풀메흐를 만나기 전에 이뤄진 것이다.
크리스티앙 구르퀴프도 <<이미지에 관해서는, 풀메흐는 우리의 관점에 동의한다. 지금 순간의 이익이 아닌, 현명한 또 선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마노두는 (풀메흐와 함께 한 뒤로) 프랑스 인들의 아이콘과 유명한 스폰서들(프랑수아 피노 그룹, 랑셀 등)의 모델이 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스포츠에 대한 본래의 뜻을 잃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기숙생
풀메흐의 관점에서, 구르퀴프는 마노두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이다. 그는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은 백지 상태와도 같다. 그리고 축구계에는 엄청난 금액의 이적료와 쏟아지는 커미션들이 있다. 축구계는 더 큰 세계이다: 올해 5월(역주: 2009년 5월)에 구르퀴프의 최종 행선지에 대한 추측들이 정점에 달했다. 보르도로의 완전 이적? AC 밀란으로의 복귀? 아니면 제 3의 클럽으로의 이적? 구르퀴프는 로리앙에 가서 많은 스타 선수(지단, 리베리, 나스리 등)들의 에이전트이자 프랑스 축구계의 배후조종자라고도 할수 있는 알랭 밀리아시오와 점심을 함께 했다.
밀리아시오가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는 날이라도, 상세히 그 일이 알려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작은 동네에서는 실시간으로 모든 일들이 알려진다. 그는 구르퀴프를 만났음이 틀림없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그 만남에 대해)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스포츠의 역사인 것을.
아버지가 프로 선수였을 당시에 구르퀴프는 4살 위의 형과 함께 모르비앙 주 플레뫼르 교외에서 평온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에게는 함께 집 담벼락에 축구공을 차며 많은 나날을 보낸 절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그는 그 담벼락에 오랜 기간 동안 축구와 함께 병행한 테니스 연습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테니스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그 점은 그 후에 그에게 모든 구기 종목에 유능한 운동 선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13살이 되던 해에 요안은 플루프라강(코트-다모르 주)에 있는 유소년 훈련 센터에 입소했다. 처음으로 입소하던 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건 그는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17살이 되어서 그는 한때 자신의 아버지가 A팀 감독이던 스타드 렌 클럽과 프로 계약을 맺었다. 그와 아버지가 달랐던 점은, 아버지는 팀에서 해고당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인들은 그에게 팀에 남아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한다고 말했다.
소년은 그 전달 사항을 잘 받아들였지만, 코치들은 그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어떤 코치들은 그에게 뛰어난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다른 코치들은 그가 특히 느리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마치 스트로보스코프에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이 동작을 끄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어느 바에서 있었던 싸움과(이 후에, 그는 그 싸움에 말려든 것이 정당방위였다고 설명했다) 첫 여자친구들, 그게 전부다. 요안 구르퀴프는 내성적이고 의지가 강하며 끈질긴 사람으로 보인다. 2006년 6월 어느날, 그는 한 단계 더 나아가 350만 유로의 이적료로 AC밀란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그가 밀란으로의 이적 동의서에 서명하던 그 날 아침까지, 올림피크 리옹의 회장인 장-미셸 올라스는 그가 리옹으로 이적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거대한 밀라노식 희극
플레뫼르 출신의 소년은 롬바르디아의 풍경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 거대한 밀라노 클럽에서 뛰어본 모든 이들은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무섭다. 몹시도 우아한 그 선수들은 선수들의 리더와 정계의 배우(베를루스코니) 그리고 그곳을 거쳐가는 톱 모델을 서로 구별할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1초 단위로 정해진 일종의 통제된 과정을 모두 소화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프랑스 식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서 친절한 가르침 만을 받았던 선수에게, 그 장애물은 극복하지 못할 그 무언가에 해당했다. 구르퀴프의 플레이 시간은 적었고, 그는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했으며, 클럽의 테크니컬 담당 부서로 부터 이런 진단을 받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것 또한 경기의 일부분이다' 이 브르타뉴 인은 곧 다른 팀에서 뛰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AC 밀란의 제너럴 디렉터인 아리에도 브라이다가 프랑스 풋볼 지에 그 당시의 일을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그(요안)가 자신이 (클럽 내부의) 모든 이들로부터 전적인 신임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조금씩 얌전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은 그와 그 사이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밀라넬로의 훈련장에서 2km 떨어진 곳에서 그는 이탈리아 라디오 채널을 듣지 않고 갈리시아 켈트 음악 아티스트인 카를로스 누녜스의 음악이나 'Bagad de Quimper'의 음악에 심취했다. 그것은 그가 밀라노에서 보여준 유일한 대담한 시도였다.
훌륭함을 겸비한 진솔함
구르퀴프가 1.4m 유로의 금액으로 보르도에 임대간 2008년 7월에, 그는 약간은 이국적인 대상을 보는 듯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AC 밀란의 스타들이 펼치는 경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축구 감독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선수.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리고 10일 전에, 이 청년은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베오그라드 원정에서 세르비아와의 격렬한 경기 끝에 경기가 무승부로 종료된 후에, TF1와의 경기 후 인터뷰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것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분명히 그는 그날 밤 동료들에 의해 레 블뢰의 얼굴이 될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수백만의 시청자들 앞에서 구르퀴프는 당당하지만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모습은 현재로서는 레 블뢰에서 조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러한 모습이었다. 또한 구르퀴프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얼굴이라 값진 모습이었다. 베오그라드에서의 경기 이후 프랑스 국가 대표팀의 주장인 티에리 앙리가 조심스럽게 그를 칭찬했다: <<그는 이제 팀에 녹아들었다.>> 최대한 말을 아낀 채.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그는 앞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의 선수로서의 발전이 단순히 자신이 좋은 선수임을 외부에 어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의 발전은 보장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네딘 지단은, 자신이 팀 내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않고 일단 (다른 선수들의) 그림자 뒤에서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빨리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르퀴프가 볼을 만지고 싶다면, 그에 따르는 일은 감수해야 한다.
레퀴프 지에 그가 말했다: <<피치위에 내가 혼자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실력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나는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나 리베리와 같이 혼자서 볼을 빼앗고 드리블로 많은 상대 선수들을 제치는 그러한 유형의 선수가 아니다. 그나의 능력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플레이는 축구를 향한 나의 관점과도 맞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축구에는 드리블이 없다. 오직 패스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드리블이 없는 축구는 긍정적인 축구이다. 그러한 축구에는 유기적인 움직임이 있고 협력 플레이가 가능한 동료들, 그리고 많은 전술적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무질서함을 제거하기
그것(역주: 전 문단에서 요안이 말한 자신의 이상적인 축구에 대한 관점)을 비현실적인 것이나 마치 잃어버린 천국을 찾는 것과 같이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일 일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이상적인 축구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또 어쩌면 그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일 수도 있다. 축구에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드리블은 패스를 능가한다. 그리고 구르퀴프는 자신의 환상적인 기술과 즉흥적인 센스로 시작해, 자신의 공간 창출과 타이밍에 힘입은 클래식한 축구 관점으로 이러한 '무질서함'을 점점 바꾸고 싶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아버지와 닮았다.
또한 그는 보르도에 대해 <<보르도에 사는 것은 행운이다. 이 도시는 나와 비슷하다. 보르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잘 표현하지도 않는다. 나는 브르타뉴 인이고 나 또한 조용한 사람이다. 보르도에서는 사람들이 축구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관심사들이 많고, 덕분에 사람들은 내가 편히 쉴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나의 사생활에 간섭하지않는다. 보르도 사람들은 예의바른 사람들이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평온함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2000년대의 스타 선수들이 (자신의 유명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번역: 페레소녀
원 출처: 리베라시옹 지 2009년 9월 19일 자 (사진 포함)
[페레소녀의 초보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한것이라 오역 의역 생략의 가능성 아주 큽니다]
출처: http://yoanngourcuff.tistory.com/1594
아래는 부연 설명이에요.
베르네 역시 프랑크 리베리, 사미르 나스리, 아딜 라미, 디디에 데샹 감독, 로랑 블랑 등의 선수와 감독들의 에이전트라고 알려져 있죠.
(이 인터뷰 http://yoanngourcuff.tistory.com/1355 )
요안의 이적설이나 축구 관계된 기사에서는 그 후로 베르네의 이름은 없고 계속 풀메흐의 이름만 나옴(...)
저 기사를 번역하다 보니...
0809시즌은 제가 좋아하기 전이긴 하지만
하는 모양새가 지금이랑 별반 다를게 없구나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
고향이나 고향 부근에만 오면 쪼르르 친구따라 선수단과 따로 떨어져서 가버리고 ㅋㅋㅋㅋㅋ
풀메흐는 제가 보기에도 이 사람이 돈에 관해서는 아주 수완이 좋은게 맞아요.
지금 꼬락서니는 맘에 들지 않지만 그 사람이 뭘 의도하는건지는 충분히 알겠어요.
공개적으로 베르네가 자신의 일을 담당할거라고 밝히기 까지 했다는건
2013년 봄인 지금까지도 요안의 스폰서는 아디다스 하나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러나 그는 어린이와도 같은 태도를 가진 선수들을 다루는 데는 비교적 취약한 편이다' 라는 문장을 생각해보면..
에휴 뭐 지금은 저때의 예측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제가 저 기사를 2년 전부터 계속 번역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내용이 넘 어려워서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하게 된 번역이라 많이 늦었지만 번역해서 올려보았어요.
(처음본건 3년 전이지만 그땐 불어로 된 기사 번역을 못했으니까여 ㅋㅋ)
나름 흥미로운 내용도 있고 ㅎㅎㅎ
그와중에 구요안은 19일 밤에 몽펠리에에서 경기하고 20일에 리옹에서 파리로 가는 떼제베를 탔다는데...
파리에 있는 여친 만나러 가는거 같던데
웬만하면 리옹으로 여친이 좀 내려왔음 좋겠네여 ㅋㅋㅋㅋㅋㅋㅋㅋ
리옹에서 파리까지 떼제베로 2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다 구요안 몸 축나면 어쩌려고 ㅡㅡ